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한국전쟁)은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며 3년 이상 이어졌습니다. 이 전쟁은 단순한 남북 간의 전쟁이 아닌, 세계 강대국들이 얽힌 국제전으로 번졌고, 전선의 극심한 이동과 수많은 희생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며 일단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협정은 종전이 아닌 휴전일 뿐, 현재까지도 남북은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지 못한 채 대치 중입니다.

1️⃣ 전선의 변화: 한반도를 오간 치열한 전투 (1950~1951)

📍 1단계: 북한의 기습 남침과 낙동강 전선 후퇴 (1950년 6~8월)

  •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전면 남침을 감행.
  • 서울은 불과 3일 만에 함락(6월 28일)되었고, 국군은 급속히 밀려 후퇴.
  •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참전하여, 부산 인근까지 밀린 상황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반격을 준비.

📍 2단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북진 (1950년 9~10월)

  •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전격 감행해 대성공을 거둠.
  •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10월 19일).
  • 압록강까지 진격하며 통일의 가능성이 보였던 시기.

📍 3단계: 중공군 참전과 국군·유엔군 후퇴 (1950년 11월~1951년 1월)

  • 11월 중순, 중국 인민지원군이 전면 참전하면서 전세 역전.
  • 서울은 다시 재함락(1951년 1월 4일)당하고,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

📍 4단계: 반격과 서울 재탈환, 전선 고착 (1951년 3월~)

  • 1951년 3월 15일,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탈환.
  • 이후 전선은 대체로 38선 일대에서 고착되어 장기전 국면으로 접어듦.

 

 

 

2️⃣ 정전 회담의 시작과 난항 (1951~1953)

📍 회담 시작: 개성과 판문점에서 정전 협상 (1951년 7월~)

  • 1951년 7월 10일, 전쟁 발발 1년 만에 개성에서 정전 회담 시작.
  • 1951년 10월, 판문점으로 회담 장소 변경.
  • 회담의 주요 쟁점:
    • 포로의 자유송환 vs 강제송환 문제
    • 군사분계선(MDL) 설정
    • 정전 이후 정치회의 개최 여부

📍 회담의 교착: 포로 송환과 정치 문제로 진통 (1951~1953)

  • 북한과 중공은 포로 강제 송환 주장, UN 측은 자유 의사에 따른 송환 주장.
  • 1952년 6월,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강경 대응을 고수.
  • 전투는 계속되며, 휴전선 부근에서 고지전, 참호전 등의 지루한 전투가 지속됨.
  •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으로 소련과 중공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며 회담에 진전.

📍 포로 교환 합의: ‘빅 스위치’ (1953년 6월)

  • 전쟁포로들을 대규모로 교환하는 빅스위치(Big Switch) 합의 도출.

3️⃣ 종전 아닌 ‘휴전’: 판문점에서의 휴전 협정 (1953년 7월 27일)

  •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유엔군-북한-중국 간의 정전 협정 체결.
  • 대한민국 정부는 서명하지 않음 (이승만 대통령의 통일지향 강경 노선 때문).

📍 휴전 협정 주요 내용

  • 군사분계선 설정: 대체로 38선과 유사하나 일부 구간은 다름.
  • 비무장지대(DMZ): 남북 각각 2km씩 총 4km 폭의 완충지대 설치.
  • 포로 문제: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송환 원칙에 따라 교환.
  • 정치회담 개최 예정: 하지만 실질적인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않음.

📍 이후 상황

  •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국 방어체계 강화.
  • 정전 협정은 법적 종전이 아닌 휴전 협정으로, 남북은 지금까지도 전쟁 상태 유지 중.

 

 

 

📌 마무리

6.25 전쟁은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입니다. 3년간의 전쟁 끝에 어렵게 맺어진 휴전 협정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며, 남북한은 여전히 군사적 긴장 속에 있습니다.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 체결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며,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합니다.